확정된 美 반도체 '가드레일'…한국엔 안도·아쉬움 교차

韓 배증 요구해온 중국내 생산능력 확장범위 원안대로 5%
생산능력확대 거래 상한선 '10만불' 사라진 것은 韓기업 부담 덜어

▲ 중국 시안의 삼성전자 메모리반도체 공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삼성전자 제공]
미국 정부가 22일(현지시간) 발표한 반도체법(CHIPS Act) 가드레일(안전장치) 규정은 중국에 대규모 반도체 생산 시설을 가진 한국 기업들에 절반의 아쉬움과 절반의 안도감을 안긴 것으로 평가된다.

가드레일은 미국 반도체법에 따라 미국으로부터 보조금을 받는 기업에 대해 미국의 전략경쟁 상대인 중국에서 반도체 생산 능력을 확장하는 데 제한을 두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는 기업은 향후 중국내 사업 확대에 적잖은 타격을 각오해야 하는 것이다.

이번에 확정된 가드레일에 따라 중국 내 생산 라인을 보유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첨단 반도체의 경우 5% 이상, 28나노 이전 세대의 범용 반도체는 10% 이상의 생산 능력 확장을 할 경우 받은 보조금을 반환해야 한다.

우선 첨단 반도체 생산 능력 확장 허용 범위를 5%로 정한 것은 10%를 요구해온 한국 기업과 정부 입장에서 아쉬운 대목이다.

미국 상무부가 지난 3월 가드레일 초안을 발표하면서 '5%'를 처음 꺼낸 이후 한국 정부와 기업은 그것을 2배로 늘려달라고 요구해왔다.

반면 가드레일 초안에서 '10만 달러(약 1억3천355만원)' 이상으로 못박은 거래 한도 액수가 삭제된 것은 한국 측에 안도감을 안긴다.

가드레일 초안은 보조금을 받은 기업이 이후 10년간 중국 등 '우려 국가'에서 반도체 생산 능력을 양적으로 확대하는 10만 달러 이상의 거래를 할 경우 보조금 전액을 반환해야 한다고 했는데, 최종안에 그 10만 달러라는 액수 한도가 없어진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재중국 반도체 투자 전문가는 22일 "10만 달러면 거의 모든 설비투자, 심지어 별것 아닌 장비의 수리까지 다 신고해야 된다는 의미"라며 "기업 입장에서는 번거로움을 감당키 어려워 공장을 접을지를 검토해야할 판이었는데 그 규정이 사라짐으로써 정상적인 운영이 가능해진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 관계자는 "미중 전략경쟁의 어려운 여건 속에서 나름대로 '선방'한 결과라고 본다"며 "전체적으로 중국내 한국 반도체 공장들이 '현상 유지'를 하면서 기본적이고 일상적인 운영과 최소한의 확장 정도는 가능하게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미국이 3월 초안에 비해 일부 완화한 가드레일 최종안을 내놓은 것은 동맹국인 한국 재계의 입장을 부분적으로 수용하는 동시에 미중관계의 관리 측면을 의식한 데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첨단 반도체는 미국이 전략적으로 중요한 영역에서 중국의 '기술굴기'를 저지하기 위한 이른바 '디리스킹(위험 제거)'의 핵심 대상이다.

전면적인 대중국 디커플링(decoupling·공급망 등 분리)은 하지 않되, 첨단 반도체 등 일부 영역에서만큼은 우방국 중심의 새로운 공급망을 구축하겠다는 것이 미국의 기조다.

지난달 미국 정부가 발표한 자국 사모펀드 등의 대중국 투자 규제 영역에도 첨단 반도체는 양자 정보 기술, 인공지능(AI)과 함께 포함됐다.

그럼에도 이번에 반도체법 가드레일의 초안에서 일부 후퇴한 것에는 동맹국인 한국을 배려하는 동시에 중국과의 관계가 더 악화하는 상황은 가급적 피하려 하는 바이든 행정부의 의중이 투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바이든 행정부는 11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계기 미중정상회담 개최를 염두에 둔 채 최근 중국과 활발한 고위급 대화를 이어가는 등 미중관계를 어느 정도 관리하려 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싼 러시아와의 갈등이 심화하고 있는데다 러시아가 북한과의 '수상한 거래'를 모색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과 첨예하게 갈등하며 '2개의 전선'을 만드는 것은 바이든 행정부로서도 부담스럽다는 판단을 했을 수 있다고 외교가는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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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지 기자 다른기사보기